서재 2016. 5. 26. 13:19

한강소설 - 흰[The Elegy of Whiteness] 표현에 날개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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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소설 - 흰[The Elegy of Whiteness]

 

나에게 한강이란 참으로 덤덤하다. 꼭 채식주의자의 영혜와 많이도 닮아있는 듯, 채식주의자를 읽는 내내 나에겐 한강이 영혜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펜 끝은 늘 섬세하다. 덤덤하게 이렇게나 매력있는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그녀를 글은 항상 나를 따듯하고 편안하게 해준다. '흰'이란 책을 처음 잡았을때 검정색 띠지가 둘러져 있고 그 위에 '죽지마, 죽지마라 제발'이란 글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궁금해서 빨리 책장을 넘겨볼만도 한데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절박한 검은 띠지가 어쩌면 우리사회에 전하는 한강의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덤덤하고 따듯한 한강의 펜이 이번엔 무엇을 그리고 있을지 한참을 기대하고 상상하다 페이지를 넘겼다.

 

 

[배내옷/p20] 스물세 살의 엄마는 엉금엉금 부엌으로 기어가 어디선가 들은 대로 물을 끓이고 가위를 소독했다. 반짇고리 상자를 뒤져보니 작은 배내옷 하나를 만들 만한 흰 천이 있었다. 산통을 참으며 무서워서 눈물이 떨어지는 대로 바느질을 했다. (중략) 마침내 혼자 아이를 낳았다. 혼자 탯줄을 잘랐다. 피 묻은 조그만 몸에다 방금 만든 배내옷을 입혔다. 죽지 마라 제발. 가느다란 소리로 우는 손바닥만한 아기를 안으며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흰 것들에 대한 한강의 이야기

 

난 흰 것이 두렵다. 더렵혀지고 타락하기 쉬운 깨끗하고 맑은 것, 상상만으로 덜컥 겁부터 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강은 두려워하기 이전 그 깨끗하고 맑은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어쩌면 두려움을 감당하고 써내려간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늘 덤덤한 그녀였으니..  흰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길 위로 발자국을 줄 맞춰 찍어내며 걷고 뒤돌아 바라보는 그 오묘한 기분이라고 하면 알까? 그 느낌으로 책장을 넘겨갔다.

 

 

 

[레이스 커튼/p71] 새로 빨아 바싹 말린 흰 배갯잇과 이불보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거기 그녀의 맨살이 닿을 때, 순면의 흰 천이 무슨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당신은 귀한 사람이라고. 당신의 잠은 개끗하고 당신이 살아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잠과 생시 사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순면의 침대보에 맨살이 닿을 때 그녀는 그렇게 이상한 위로를 받는다. 

 

 

 

 

총 129페이지의 이 얇고 작은 흰 책 한권, 백지에 힘껏 눌러 쓴 작가를 생각하며 한자한자 조심스레 읊조리며 머릿속으로 옮겼갔다. '흰' 덕분에 내 인생 여러 날 중 가장 중요한 오늘 하루를 풍요롭게 통과함에 감사하며 책을 덮는다. 

 

 

 

           한강 필사 노트 中     

 

 

 

결혼식을 앞둔 이들은 서로의 부모에게 옷을 선물해야 한다. 산 자에게는 비단옷을, 망자에게는 무명소복을. (중략) 당신, 올 수 있다면 지금 오기를, 연기로 지은 저 옷을 날개옷처럼 걸쳐쥐를. 말 대신 우리 침묵이 저 연기 속으로 스미고 있으니, 쓴 약처럼, 쓴 차처럼 그걸 마셔주기를. [한강소설-흰(p124 소복,p125 연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