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2016. 12. 21. 11:03

상냥한 폭력의 시대-상냥한 그들이 폭력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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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의 시대- 상냥한 그들이 폭력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시대

 

상냥한 폭력의 시대 - 정이현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상냥한 그들이 폭력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시대_너와 내가 만든 이 시대

 

 

동남아가서 늘어지기 좋아하는 나로써는 다음 여행때 가장 먼저 이 책을 챙기겠노라 다짐한다.

내가 사는 이세계와 조금이나마 동떨어진 곳에서 억지스러울지라도 약간의 여유를 가지며 '상냥한 폭력의 시대'속 7편의 단편소설을 읽으면 그들과 나, 그리고 우리들이 살아내고 혹은 살아지고 있는 이 시대를 한발짝 물러선 시점에서 좀 더 포용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 등장하는 그들은 하나같이 나와 닮아있다. 인정하기 싫지만(소설 속 그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모를거라 착각했던 나의 민낯들을 그들에게서 보았다.  겉으로 드러내기 창피해 꼭꼭 숨겨왔던 이 속물성! 그래서인지 읽는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 중 가장 강렬하게 다가운 마지막 소설에 대해 늘어놓고자 한다.

 

 

일곱번째 소설 '안나'속의 '경'

 

'안나는 37기 중에 최연소자였다. 그때 안나의 나이는 스물두 살 아니면 스물세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던 날, 안나가 태어난 해를 말하자 좌중에서 오오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던 것을 경은 기억했다. 그때 안나는 빙긋 짧게 한 번 웃어보이곤 자리에 앉았다. 미소가 싱그러웠다. 경은 박수를 쳤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뒤틀렸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박수를 받을 일이 나이뿐이라니 왠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

 

경은 자신이 가입한 라틴댄스 동호회에서 대희라는 남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 착각하였지만 정작 대희는 안나에게 빠져있다는 걸 알고 안나의 자기소개 장면을 회상하는 부분이다.

 

당신이 그러하듯 나 또한 이런 베베꼬임을 경험해본 적이 양손양발로 헤아릴수나 있겠냐 마는 누군가를 부정적인 인식속에 각인시키는 일이 자신의 좁디좁은 마음과 쪼잔하기 그지없는 심리로 인한 것이라는 걸 굳이 곰곰히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것이다. 물론 머릿속에선 초단위로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는 멘트들을 꽂을테지만... 

열등감, 시기질투, 어디서 부터 꼬였는지 분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베베꼬인 심사, 왜 그런기분이 들었는지 경은 진정 몰랐을까?

 

이렇듯 경은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심사를 지닌 인물이다. 당신과 나처럼,

 

 

 

 

 

경은 그런 안나를 8년 후 상상할 수 있는 영역 너머(p.193)인 곳, 경의 아들이 들어가게 된 영어유치원, 우리나라에는 영어유치원이라는 공식 명칙은 존재하지 않으니 엄밀히 말해 영어학원의 유치부(p.204) 자모들의 모임장소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는 안나를 마주하게 된다.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 놀랐으나 알은채는 하지 못했다. 못한것인지 안한것인지... 경의 입장에서는 계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모피를 입고갔으나 그런 구형의 모피를 입고 온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어깨가 움츠려들어있는 상태였고, 안나또한 학부모로 온 경과 자신은 고작 영어유치원에서 보조교사(따로 자격이 필요없으며, 아이들을 통원버스에 태우고, 화장실에 동행하며, 식사시간을 돕는정도의..(P.206))하고 있다는 입장차가 어떻게 다가왔을지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긴하다.  여기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는 경의 속물성, 근데 과연 이걸 속물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외모나 옷차림등이 상대를 판단하는데 얼마만큼의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는 알고있다. 그렇기에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어떤식으로든 잘보이기 위해 고가의 옷을 선택하는 걸 나쁘다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다만 좀 씁쓸한건 부는 곧 사회에서의 계급이라는 생각, 못마땅해 죽겠지만 이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옳지 않은 생각임에는 분명하다. 우리 스스로가 이런 어줍잖은 틀로부터 벗어나긴 해야할텐데 쉽지 않은 것 또한 우린 알고있다. 내안에서 이런식의 폭력적인 고정관념이 일반화되어있고 그속에서 시대탓하며 정당성을 찾아보려 무리하고 있는 나의 이 부끄러운 이중성이 가뜩이나 무거운 내 머리를 더욱 무겁게 한다.

 

 

영어학원을다니기 시작하면서 입을 닫아버린 아들의 문제를 누군가와 이야기하고싶은 맘에 아들의 보조교사인 안나를 사석에서 만나게 된다. 안나는 경에게 자신의 평탄치 않았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보육교사 자격증없이도 보조교사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그로인해 아들이 다니는 영어유치원에 취직하게 되었다고도 얘기한다. 몇번의 만남을 거치면서 둘은 좀 더 편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서로의 상처에 위로를 하기도 하는 상대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경은 안나의 위로에 안나 같은 이에게도 곧바로 들킬 정도로(p.220) 자신의 우울함이 드러났던건 아닌지 살짝 불안해하기도 한다. 안나의 실연을 위로하기 위해 맥주를 사기도 하는 경은 아들이 옮길 영어학원을 알아보면서 보조교사들의 자격증을 확인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경이 안나와 만날때는 옷차림이나 화장등 다른것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되니까 금새 안나와 친해질 수 있었던거다. 누구보다 안나가 편했겠지, 경은 안나의 인생역경을 들으며 자신의 삶에 위로를 더할 수 있었으며, 자신은 안나보다 좀 더 나은 삶, 좀 더 나은 위치 혹은 계급에 속해있다는 당연성은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상대도 알고 나도 아는 그런것정도로 여기지 않았을까? 어느한쪽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간에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이런 보이지 않는 상하관계는 곳곳에 잠재되어 있다, 부부사이 주도권에 대한 분쟁(?)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하며 코웃음 한번 치고 덮어야지, 꺼내놓고 들춰본다한들 답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감정소모는 여기서 그만하기로 한다.

 

 

몰라서 못고치는 것과 알면서 못고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알면서 저지른일과 모르면서 저지른일에 대한 결과값이 다른경우와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나하나 생각 고쳐먹는건 쉽지만 나하나 고쳐진다고 뭣이 달라지기나 할까? 날 보는 시선들은 여전히 그대로일텐데... 개뿔도 모르면서 '남들도 이럴것이다. 다들 나와같이 폭력적인 관념이 뼛속까지 박혀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이 정말 무서운거다. 남들은 그렇지 않은데, 설령 남들이 그렇다하더라도 내 세상은 내 머릿속에서 내가 판단하는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말이다. 나의 인식이 바뀌면 적어도 내가 중심인 나의 시대는 변화할것이다.

 

무지비하지만 상냥함으로 포장된 폭력의 시대는 너와 내가 만들었으니 너와 내가 바꿔야 하는게 맞다. 내가 만들었으니 나부터 변화하는게 정답이다. 국민의 손으로 올려놓은 높은자리, 되돌릴순 없겠으나 국민들의 손으로 다시 바로잡기 위해 촛불을 드는것처럼... 바꿀 수 있을거란 믿음이 변화의 첫단계가 아닐까 싶다.

 

난 오늘도 말은 참 쉽다는 생각을 뼈져리게 느끼며 글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