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2012. 9. 5. 11:58

그 청년이 아름다운 이유 -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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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

5백 여명의 평화 시장 노동자들이 국민은행 앞에 모였다.

현수막에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쓰여있었고

경비원과 경찰들이 5백명의 노동자들에게 몽둥이로 맞서고 있었다.

 

그때 한쪽 골목에서 어린 청년이 근로기준법 책을 품고 나온다.

순식간에 그 청년의 옷 위로 불길이 치솟았고 전신은 금방 불길에 휩싸였다.

그는 "근로기분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며 구호를 외치며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나간다.

결국 쓰러져버린 그는 인근에 있는 국립의료원으로 후송되지만 결국 숨을 거두게 된다.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해 분신한 그가 바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며, 당시 그의 나이는 만22살 이었다.

                            

 

  ⓒ 이상엽

 

전태일 / 노동운동가, 피복공장 재단사

(1948.8.26 ~ 1970.11.13) 

 

 

 

 

 .  .  .                                                               

전태일 그는 많이 배우지도 그렇다고 가진것이 많은 자도 아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남대문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평화시장에서 재봉사로 일을 하게 된다.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또한 자신의 이익과 편함보다는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어린 소녀들이 노동자의 기본생활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근로 기준법이란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사당하는 어린 노동자들을 위해

 

근로 기준법을 스스로 공부하여 노동청과 회사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보내며, 근로환경 개선에 대한 애절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자 노동자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세상에 외친다. 

 

꺼져가는 숨을 몰아쉬며 그는 마지막까지 "내 죽음 헛되이말라"라는 말을 남겼다.

 

 

 

 

 

배울만큼 배우고 알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을 섞어가며

 

보기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은, 그것이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법이 아닐까?

 

그는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학력으로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며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고 하는데, 그 당시 대학생들은 어린소녀들이 일요일도 없이

 

하루 열 다섯시간을 꼬박 일해가며 병들어가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지

 

정말 도움을 줄 수 있는 대학생이 없었을까? 라는 의문점이 든다.

 

혹시,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좀 배웠다는 이유로 발 밑은 보지 못한채 잘못된 나라를 바로 잡아보겠다며

 

자기들끼리 뭉쳐 학생민주화운동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배우지 못했다고 똑똑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전태일은 분명 똑똑하고 현명한 청년이였으며,

 

지독한 가난으로 힘들게 살았지만, 자신보다 힘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아니 자신이 할 수 없는데까지도 해보이며 자신을 희생했다.

 

그 어린청년이 어떤 힘으로 이리도 큰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 학업을 이어갔더라면

 

좀 더 큰 인물이 되어 좀 더 영향력있는 일을 일구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 약자였던 전태일은 나약하지 않은 생각과 행동으로 큰 변화를 이루어 내려 노력했고

 

자신의 희생으로 인해 더 이상 노동자들이 고통받지 않길 바랬을 것이다.

 

용사참사나 쌍용자동차 사건을 보고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적지 않을 것이다.

 

전태일이 그가 아름다운 이유는

누구나 생각은 하지만 그 누구도 실천하지 못한 일을 해내서가 아닐까?

 

 

 

 

 

 

 

그가 마지막 남긴 말 "내 죽음 헛되이 말라"

 

분명 그의 죽음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가 한 노력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잠 안오는 주사를 맞아가며 손이 마비된 채로 재봉틀을 돌린 여중생들

 

삶의 터전을 빼앗아가며 적절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죽음으로 내몰린 철거민들

 

평생 일해온 직장을 한순간에 빼앗기고, 자신을 지켜줄거라 믿었던 사회에 배신당해 삶의 끈을 놓을 수 밖에 없었던 해고자들

 

스스로 눈감아버리면 언젠가 내 일이거나, 내 가족들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노동자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전태일의 일기 -

1970년 08월 09일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사건,

참으로 전태일 보기 민망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