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2012. 9. 5. 18:11

명성황후와 민비사이(1851~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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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민자영이라고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나,

민아영,민정호 등 각기 다른 이름들도 거론되고 있어

어떤이름이 그녀의 진짜 이름이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사진찍는 걸 싫어했다고 하는데 그때문인지

그녀의 사진이라고 알려져있는 여러장의 사진들 속에는

조금씩 다른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어떤 사진이 그녀인지도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이다.

 

 

 

독일의 한 사진작가가 찍은 Die Ermodete Konigin(살해당한 왕비)

 

 

 

 프랑스잡지 '르 뚜르 뒤 몽드'에 실린 그녀의 사진

한때 교과서에까지 실리며 그녀의 실제 사진이라 여겨졌으나

현재는 교과서에서 빠진 상태이다.

(그 덕에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그녀의 모습이다.)

 

 

일본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한 조선의 마지막 국모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명성황후 또는 민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중 시해사건에 관련되어서는 뮤지컬, 드라마, 책등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특히 1995년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뮤지컬 명성황후는 초연 당시 총 12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에 걸맞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대상을 비롯한 5개부분에서 상을 휩쓸었으며, 미국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외에도 김진명의 역사소설 "황태자비 납치사건"은 오랜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다수의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일반인은 물론이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호칭문제로 각자 다른 목소리들을 내고 있는데....

 

명성황후 or 민비

 

말그대로 호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 이 두 호칭 중 어느것을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그녀에 대한 평가가 확연히 달라지기도 한다.

 

"민비"라는 호칭은 일본에서 명성황후를  비하하기위해 쓰는 말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나

우리역사서에도 종종 등장하는 표현이라 틀린표현이라고는 할 수 없다.  

보통 민비호칭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민중들의 현실은 무시한 채 외교(청,러)에만 힘썼다.","사치가 심했다.""매국노다.","민중들이 먼저 죽이려고 했었다."

등의 이유로 그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대부분이기에 민비라는 호칭은 그녀를 '낮춰부르는 말'이라는 인식이 있는것이다.

한때 유인촌 전 장관이 강남소방서 강연에서 "민비"라는 호칭을 사용해 떠들석했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왕후가 죽은 후에는 시호라는 이름을 내리게 되고, 그녀의 시호는 명성황후이기 때문에

이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명성황후라 부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긍정적인 면을 우선시 하거나, 아무리 그래도 왕후인데 민비라는 호칭은 적절치 못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등에서 실제와는 상당부분 다르게 그녀를 미화시켜 제작한다는 것도 문제다.

시청자 중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민비호칭에 과민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민비라는 호칭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데,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양파도 아닌것이 까면 깔수록 안좋은 기록들만 나온다.

그녀가 고종의 비가 되고, 이때부터 정권의 부패가 시작된다.

(국가예산의 1/6을 탕진했다고 해서 "조선된장"이란 우스갯소리도 한다.)

이로인해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그녀는 궁궐을 빠져나가 도망 쳐 목숨을 건진다.

권력에서 밀려나자 흥선대원군을 청나라로 납치하게 한 후 다시 권력의 중심에 자리잡는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때 청나라를 끌여들여 진압하기도 했다.

이런일들로 인해 청나라와 일본의 전쟁이 조선땅에서 치뤄지게 된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그녀는 일본이 무서워 하는 러시아와 외교를 펼치려 노력하고,

이때문에 을미사변이라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된것이다.

그녀는 당시 궁녀로 변장하고 있다가 발각되어 살해되었다고 한다.

(살해된 장소는 복도나 마당 등 여기저기서 다르게 말을 하고 있어 정확치 않다는 표현이 맞겠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교과서나 역사서에 나와있는 글들이 얼마나 사실적인지는 알 수 없는게 사실이다.

 

틀리다와 다르다는 엄연히 다른의미라는 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즉, 둘 중 어떠한 호칭을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호칭을 쓰는 사람들에게 틀렸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적 기록에 근거하여 각자의 기준에서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입맛에 맞게 선택하면 되는

결국엔 논란의 요지가 될 가치가 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나는 조선의 국모다." 라고 말한것은 명성황후, 즉 민비가 아니라

드라마 작가가 써준 이미연(극중 명성황후)의 대사였을 뿐이라는 것.

 

 

 

 

 

                       프랑스에서 최초 발견된 명성황후의 초상화이며, 뒷편의 그림자는 명성황후를 지키던 홍계훈이라 추측.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2009)"는 이 둘의 사랑을 연출했으며, 초상화속 명성황후가 수애(극중 명성황후)를 닮아 화재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