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2013. 1. 1. 05:28

어쩌면 우리보다 똑똑한 지능을 가진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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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 - 똑똑한 동물들(121230)

2012년 영국 BBC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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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많은 난관에 부딪힐수록 더욱 영리해진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미국 전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박새는 어느 지역이든 생김새는 모두 같지만 거친환경에 사는 박새일수록 영리합니다.

 

 

실험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눈으로는 보이지만 유리를 치워야만 먹이를 꺼낼 수 있습니다.

 

 

두마리 모두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의 부모(가족)들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좌측 박새의 부모는 박새들의 천국인 남쪽지방에서, 그리고 우측 박새의 부모는 알래스카에서.. 

 

 

실험을 해본 결과 좌측 박새는 쳐다만 보고 먹이를 먹지 못하는 반면, 우측 박새는 손쉽게 유리를 들어내 먹이를 먹습니다.

박새들은 가족으로 부터 이러한 재능(혹은 지능)들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박새의 뇌는 서식지 환경이 험난할수록 더 크고 발달되어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예컨데, 적당한 환경에서의 동물은 어쩌면 더욱 영리해질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처럼 동물들을 교육시킨다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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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 쿠르스

 

 

17년간 과학자들을 놀래킨 바다사자 "리오"는 4살짜리 아이의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숫자는 물론 알파벳도 구분이 가능합니다.

위의 실험은 가운데(H)를 먼저 보여주고 나서 양쪽에 있는 숫자와 알파벳을 보여줍니다.

 가운데와 같은 문자를 고르게 하는 실험인데요. 리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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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과학자 아이린은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서 동물이 문자와 숫자 이상을 배울 수 있으며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회색앵무인 "알렉스"를 25년간 교육했고 죽은 알렉스를 대신해

다른앵무새인 크리핀를 같은 방식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이게 뭐지?"

" 종이"

 

"이게 무슨 모양이지?"

"네모"

 

이게 무슨 색이지?

"주황"

 

이뿐 아니라 숫자와 문자도 알아보고 읽을 수 있습니다.

 

크리핀 옆에서 제자와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되묻기를 반복하다 보면

크리핀이 인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렉스는 크리핀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물의 같고 다름과 그 사물의 묘사까지도 가능했으니 말입니다.

 

 

알렉스는 사람의 말을 할 줄 알았고, 유치원생들도 어려워하는 질문에도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알렉스가 죽었을때 유명잡지와 신문에 그 소식이 전해지고 부고가 실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좋은 교육은 대상이 앵무새이든 사람이든 최상의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과연 동물이 지능검사에서 성인을 이기는 게 가능할까요?

 

불가능해 보일수도 있겠지만 지난 50년동안 동물들은 상상이상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 관속에 먹이에 부리가 닿지 않아 돌을 집어 넣어 결국 먹이를 꺼내 먹는 모습

동물들은 도구를 이용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계획을 세웁니다.

또 사람과 마찬가지로 시간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배우기도 합니다.

동물들은 지식을 쌓기도 하고, 창의력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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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년동안 과학자들은 놀라운 발견을 하게됩니다.

 

숫자와 기억력의 대가들이 이곳에 모여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교토대학입니다.

 

그중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똑똑할지도 모르는 침팬치..어린천재로 불리는 "아유모"가 있습니다.

아유모는 교토대학에서 태어나 평생 공부를 해왔습니다.

 

 

숫자를 순서대로 클릭하는 시험따위는 아유모에게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저보다도 빠름;)

아유모는 다섯살때 과학자들이 내는 지능검사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11살인 지금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기억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해보시겠어요?

 

 

각 숫자들의 위치를 기억합니다.

 

 

숫자를 가린 후 각 숫자의 위치를 기억해서 순서대로 클릭해 내는 테스트입니다.

 

아유모는 이 숫자와 위치를 기억하는데 1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자 그럼. 이렇게 생각을 해보도록 하죠.

숫자가 보이는 시간이 0.06초라고 해봅시다.

사람에게는 숫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지 않을지 모르지만, 아유모는 그 숫자와 위치를 기억합니다.;;

 

델몽트 曰 :

어쩌면 동물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훌륭한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유모가 숫자와 기억력에 보이는 남다른 지능은 100% 교육에서 오는 건 아닐겁니다.

우리가 교육한다고 해서 0.06초동안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숫자를 외울수는 아니 그 숫자를 볼 수 조차 없을테니까 말이죠.

 

이래도 학대하시겠습니까?

 

 

다큐 2012. 12. 13. 18:13

박정희 프레이저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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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Washington

 미국 워싱턴

 

 

박정희 정권이 미국의 국회의원들을 돈으로 매수하려는 사건이 발각되고, 이것을 미국언론들은 코리아게이트 사건이라 불렀다.

 

 

 

1977년 2월 3일

 

 

미 의회는 프레이저의원이 이끄는 국제관계 소 의원회에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프레이저의원은 박정희 정권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1977년 6월 22일

Fraser Committee

프레이저 청문회

 

 

박정희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키고 오랫동안 중앙정보부(KCIA ;Korea Central Intelligence Agency) 부장을 지낸 김형욱.

그는 박정희의 최측근에서 그에게 충성을 바친 인물이다.

박정희의 3선개헌에 앞장서 2인자로 군림하며 위세를 떨치던 김형욱은 3선개헌안이 통과된 직후

중앙정보부장직에서 해임, 버림받은 것에 배신감을 느낀 김형욱은 미국으로 망명을 간다.

 

그런 김형욱이 프레이저청문회에서 증언을 할 것을 알고 박정희는 민병권장관에게 김형욱이

청문회에 나갈것을 만류하라는 특명을 내렸고, 김형욱은 모든것을 보장해줄테니 제3국으로 떠나라는 조건을

단호히 거절하고 미국회에서 박정희 정권의 비밀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2년후, 김형욱은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후 살해되었다.

 

 

 

1978년 10월 31일

 

프레이저 보고서가 의회에 제출되었다.

이 보고서에는 박정희의 집권기관 전체에 대한 조사내용과 한국의 경제 성장에 관한 내용등이 담겨있었다.

 

"왜 한국은 그토록 빨리 성장할 수 있었을까? "

 

그 비밀이 프레이저 보고서에 담겨있었다.

 

하지만 박정희정권은 보고서의 모든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였고, 1년 후 그는 부하 김재규의 총탄에 살해되었다.

그 이후에도 박정희가 키워놓은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프레이저 보고서를 차단하고, 박정희의 경제 신화를 보호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프레이저 보고서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져갔다.

 

 

 

 

한국이 빠른 시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가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이 핵심이었다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중장년층은 박정희가 한국의 수출주도형 전략을 제시해서 한강의 기적을 만든거라고 믿고 있다.

 

 

프레이저 보고서와 비밀이 해제된 미국의 기밀문서들도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미국은 이승만정권을 세워 남한의 경제성장을 시도하였으나,

이승만과 친일파의 부정부패로 인하여 이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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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산주의 국가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경제력은 세계 50위, 남한은 101위에 그쳤다

 

 

 

 

케네디는 친미국가 개발전력(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발표한다.

 

여러 전문가들을 통해 공산주의 국가가 늘어나는 이유를 찾아보니

공산주의 혁명은 가난한 국가들에서 발생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가난한 국가들의 경제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당시 남한이 북한과의 경제력차이로 인해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진 않을까 미국에서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때 남한 상황이 위험스런 방향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보고서가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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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심리가 강력한 반미 감정으로 폭발해서 혁명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따라서 미국이 개입했다는 비난을 듣지 않으면서

남한의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Walter McConaughy

(매카나기 주한 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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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는 즉시 매카나기를 미국으로 불러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로 임명하고,

메카나기의 책임아래 새로운 한국의 발전전략을 담은 종합보고서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장면 정부와 함께 경제부흥을 최우선 목표로 내걸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

 가난한 국민들을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만약 이 계획이 성공했다면 장면은 뛰어난 지도자로 존경받았을테지만 행운의 여신은 장면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란 인물에 대해 조사한다.

가장 먼저 케네디가 알게 된 정보는 박정희가 일제때 민족을 배신했던 친일파라는 점과 해방 후 자신의 동료들의 전부 밀고해서

죽게 만들고 자신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로인해 박정희는 미국에서 스네이크 박이라 불렸으며, 미국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공산주의가 되버리면 일본이 위험하고 미국의 태평양 방어라인도 위태로워지기에 미국은 꼭! 한국을 발전시켜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 개발에 집중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일본의 수상을 만나 한국의경제

개발에 협조하라고 요청하고 일본은 한국을 일본의 경제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이를 승락한다.

 

 

 

이 후 박정희는 일본과 미국의 권력자들을 만난다.

 

 

 

그곳에서 박정희는 일제때 천황의 군인들을 양성했던 나구모 육군 중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선생님께서 저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본사람들은 상상이나 했을까?

침략을 당했던 한국인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기에 자신들의 계획이 어렵지 않을꺼라 확신한다.

 

 

그 외에도 박정희는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침략자들에게 존경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일본 극우파들은 박정희와 손잡과 한국을 경제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그에게 검은돈을 주기 시작한다.

 

 

 

케네디도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박정희를 백안관에 초대했다.

그 회담에서 박정희는  미국에 특별안정기금 2억 5천만달러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을 알고 있는 미국은 박정희에게 경제개발계획 수정을 제안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경제참모조차 이를 인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박정희는 어느것 하나 터무니 없고 현실성 없는 경제개발계획을 바꾸려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1962년 증권시장이 파탄이 난다.

박정희 집권을 위해 그의 조카 사위 김종필의 부하들이 정치자금을 마련하려고 사상최대의 주가조작 사기를 친다.

김종필은 이 주가 조작 사기로 2천만에서 3천만 달러(현재 약 9천억원)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이 자금의 일부는 박정희에게 상납되었고, 공화당 창당 자금, 야당 교란 작전에 쓰였다고 한다.

한참 걸음마를 떼려는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뿐아니라 박정희는 계획없이 화폐개혁을 시도했으며, 예금동결 등 한국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그때 박정희에게 화폐개혁의 위험성을 설명해준 사람이 삼성의 이병철이었다.

 

예금동결을 해지하라는 미국에게 박정희는 미국이 개입할 권한이 없다고 버텼다.

그 일로 미국이 더 이상 원조를 하지 않겠다고 하자 박정희는 태도를 바꾼다.

그때부터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경제개발정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일로 미국은 박정희의 참모들을 전부 새로 교체하였다. 새 관료들은 미국에 협조적이었고, 박정희는 이에 저항했다.

이에 미국은 한국신문에 원조를 전면 중단하겠다는 기사를 내고, 그에 동요한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될까봐 박정희는 이에 응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박정희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원조를 끊겠다고 협박을 했고 미국의 적극적개입과 주도를 맡는 수출주도형 개발전력으로 전략된 것이다.

 

사사건건 박정희는 반대의견을 냈고 그 때마다 미국은 당근과 채직을 적정히 사용하여 미국의 계획대로 한국경제는 발전해나갔다.

 

 

 

 

그리고 박정희 수십명의 기자들과 산업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언론을 통해 한국민족의 갈길은 본인이 제시한다며,

수출 10억불을 목표를 달성할 것이고 수출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룩할것이라고 언론플레이를 하고다녔다.

 

이를 본 국민들은 실제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경제에 감탄하며 이 모든것이 박정희의 지도력덕분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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