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2012. 12. 14. 19:33

남영동 1985. 9월 대공분실, 이근안, 김근태..그곳에서 대체 무슨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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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남영동 1985(감동 정지영)의 상영회가 있었다.

 

이 영화는 정지영 감독은 故김근태 의원이 당시 공포의 대명사로 불리던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겪은 

 

22일간의 잔혹한 기록, 남영동 수기를 보고 제작한 영화이며, 이번 상영회에서는 故김근태의원의 추모 1주기를 앞두고

 

 헌정 영상을 공개하여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김의원의 배우자인 인재근 의원은 물론이고 당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함께 아파했다.

 

 

 

 

 

영화 개봉 후 인재근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하 뉴스엔 기사 인용)

 

"이 영화는 아주 놀랍고 고통스럽습니다. 보기도 참 어렵습니다. 어려운 만큼 여러분들이 과거사 청산과 고문받은 사람들의 치유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소망합니다"라며 "우리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밝혔다.

"저의 영원한 동지요 짝꿍인 김근태 씨는 인간으로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았지만 항상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고 따뜻한 아버지, 다정한 남편, 그리고 품위있는 정치인으로서 아름다운 생을 마쳤습니다"며 "그를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진심어린 당부의 말을 전했다.

또 "끝으로 이 어려운 영화, 힘든 영화를 만들어주신 정지영 감독님과 그리고 힘든 연기를 해주신 배우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남영동1985' 팀에 대한 고마움을 말하기도 했다.

 

 

 

 

故 김근태의원(전 국회의원)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대표적인 인물로

 

1985년 9월 4일 서부경찰서에서 풀려 나오던 김의원을 민주화추진위사건으로 인하여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9월 25일(22일간)까지 알몸 상태로 이근안 등 고문기술자들에 의해서 각종 고문과 구타를 당한다.

 

 고문의 실상을 부인 인재근 씨와 함께 미주 한국일보에 폭로하여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받았고,

 

88년에는 독일 함부르크 자유재단이 수여하는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다시 구속되기도 하였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15대 국회의원으로 3선의 의정활동과

 

제 43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김의원은 당시 김의원을 고문했단 이유로 7년간의 형을 살고 나오는 이근안에게

"남은 여생 건강하기 바란다"라는 당부를 하기도 했다.

 

2011년 12월 30일 고문으로 인한 오랜 후유증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셨다.

 

 

고문당사자인 이근안(현재 목사)은 최근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이라는 자서전을 출간한다.

( 어지간히 먹고 살기 힘든가 ? 상황판단 못하고 얼마나 더 욕을 먹으려고 이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