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14. 10. 2. 22:39

지식채널ⓔ 비폭력,불복종,비협력, 무적의 사나이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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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낯선 역에 버려진 24살의 변호사

 

 

 

 

부당함에 맞선 그의 저항방식

 

비폭력 / 불복종 / 비협력

 

 

 

 

1919년 인도의 독립운동이 치열해지자 영국정부는 구속과 투옥이 유리한 롤라트 법을 제정

 

이에 저항하는 간디의 사전 방침

 

 

 

"투쟁에 있어서는 진리를 따르고 생명, 인격, 재산에 대한 폭력을 삼간다"

 

 

 

 

하지만

 

 

 

시위대에 대한 영국의 잔인한 진압

 

 

 

이에 반발하여 발생하는 전국적 폭동 

 

 

 

결국 1919년 4월 암리차르에서 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영국군은 무차별 총격을 가한다.

 

 

 

4천 여 명 사망, 1천 명 부상

 

 

하지만 이는 오히려 179개의 언어와 544개의 방언을 쓰는 3억 명의 인도인들을 더욱 결집시켜

 

 

 

인도인들은 부당한 세금을 내지 않게 되고

 

 

 

몽둥이로 때리면 묵묵히 맞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1930년 전쟁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영국

 

 

 

"인도의 독립은 영국의 큰 손실이다. 인도는 국일을 위해 중요한 나라다." - 처칠 -

 

 

 

영국의 국익을 위해

 

 

모든 소금을 비싼 값에 영국으로부터 수입해서 먹을 것을 강요한다.

 

 

 

'소금법'제정

 

 

 

하루 60k, 25일간 쉬지 않고 해안가로 걸어가는 간디.

 

 

 

그에 이어 함께 행진하는 각계각층의 인도인들

 

 

 

그리고 간디는 사람들에게 직접 소금을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비록 한줌의 소금이었지만

 

 

부당한 '소금법'에 대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이었다.

 

그리고 폭력적 진압과정에서 한 통신사 기자가 목격한 기이한 광경

 

 

 

 

" 그들은 마치 볼링 핀처럼 무너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열을 이탈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며 얻어맞고 쓰러질 때까지 행진을 계속했다."

 

 

결국 6만 여 명의 인도인과 함께 투옥된 간디

 

 

 

 

 

간디는 법정에서 이렇게 진술한다.

 

 

 

 " 저는 어떤 관용도 바라지 않습니다."

"어떤 정상참작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법적 용어로 말하자면 의도적 범죄에 해당하겠지요."

"그러나 저는 제가 한 행위에 대해 한 시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가장 고결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행위에 대한 대가로 제게 부과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판결을 기꺼이 받기 위해서 이자리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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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채널ⓔ 무적의 사나이'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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